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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소설가 여성 “내가 예수와 막달레나의 후손이다

나레 2010. 1. 14. 00:02



스스로 ‘예수의 후손’임을 주장하고 나선 여성이 세계적인 화제를 낳고 있다.

USA 투데이, 데일리 메일 등 최근 미국 및 영국 언론의 지면을 장식한 화제의 주인공은 현재 미국 LA에 살고 있는 43세의 캐서린 맥고완.

맥고완은 소설 ‘다빈치코드’에 등장, 세계적 논란을 낳았던 ‘예수와 막달레나의 후손’에 관련된 자서전적 소설을 최근 출간했는데, 책을 통해 스스로 ‘예수의 후손’임을 자처하고 나선 것.

그녀는 젊은 시절 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언론인으로 일했고, 현재는 미국 LA에서 세 명의 자녀와 함께 살고 있다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맥고완은 소설 ‘다빈치코드’가 출간되기 6년 전인 지난 1997년 ‘예수와 막달레나의 후손’과 관련된 내용을 담은 자서전적 소설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 출간을 여러 출판사에 제의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고, 지난 해 자비 출간 형식으로 미국 뉴욕에서 책을 내놓았다.

그리고 최근 세계적인 출판 그룹 ‘사이먼 앤 슈스터’와 거액의 출간 계약을 맺고 자신의 조상인 ‘예수와 막달레나’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출간하기에 이른 것.

맥고완은 자신의 혈통이 예수와 막달레나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는데, 프랑스 등에서 고문서 등의 자료를 추적, 이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고 강조했다. ‘다빈치 코드’에 나왔던 ‘예수의 후손’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이 그녀가 책을 통해 밝힌 주된 내용이라는 것.

‘예수와 막달레나의 후손’임을 자처하는 맥고완은 영국 및 미국 언론에 연일 소개되는 등 세계적인 논란과 화제를 낳고 있는데, 그녀는 최근까지도 경매 사이트에 신발을 팔고 상금이 걸린 퀴즈쇼에 나가는 등 생계에 큰 곤란을 겪어 온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논란의 여지가 가득한 책 출간을 통해 돈방석에 올라앉게 되었다는 것이 언론의 설명이다.

(사진 : 온라인 서적 판매 사이트에 소개된 저자의 모습)

이상범 기자 (저작권자 팝뉴스)

 

프랑스에 있다는 예수의 자손과 무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프랑스로 망명을 하였다는 사실이 영국의 BBC방송국 기자들에 의해 밝혀지고 영국 법정에서 재판을 통해서 확인되었다.

영국 BBC 방송국의 기자 세 사람은 10여년 간의 조사 끝에 1982년「성혈과 성배」(TheHoly Blood And The Holy Grail/ 미카엘 베이전트, 리처드 레이, 헨리 링컨 공저)라는 책을 통하여 위와 같은 놀라운 내용을 밝힌바 있는데 책의 주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을 하여 자녀까지 두었으며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구세주 행세를 하며 다윗 왕을 계승하여 유대의 왕이 될려다가 유대인의 반발로 인해 처형될 처지에 놓이게 되자 예수의 처남 아리마대의 요셉을 통하여 많은 뇌물을 받은 바 있는 로마의 유대 총독 빌라도와 짜고 십자가에서 죽는 것 같이 연극을 하고는 그 뒤 부활의 연극을 한 다음 로마병사들의 호위 속에 프랑스로 망명을 하였다.

아내 막달라 마리아와 자녀들과 프랑스 골(gaul) 지방에 정착한 예수는 은둔 생활을 하며 80세를 넘게 살다 죽었다.

프랑스 남부의 마을 렌느 르 샤토에서 수 킬로 떨어진 야산 몽 카르두에 예수의 무덤이 있으며 막달라 마리아는 렌느 르 샤토에서 교회를 세워 교구장으로 지내다가 프랑스의 액생 프로방스 생봄에서 죽었으며 예수의 제자 나사로는 마르세이유에 주교관구 겔트교회를 세워 주교로 있다가 거기서 죽었다.

예수의 후손들은 4세기 후에 프랑크 왕국의 메로빙 왕조에 동화되었으며 카롤링거 왕조의 비지코트가등 8개의 가문을 이루었으나 이후 기독교가 번성함에 따라 예수의 혈족은 겉으로 예수의 혈통임을 드러내지 않은 채 살아왔다. 1099년에는 예수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고드프로아 드 부 이용이 십자군 전쟁 때 예루살렘에서 십자군이 세운 예루살렘왕국에서 잠시 다윗 왕을 계승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예수의 친척 징표를 가진 귀족을 포함하여 많은 예수의 후손들이 현재에도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 살고 있다.
이러한 예수가의 비밀에 대해 성당 기사단(聖堂騎士團, 1118년 예루살렘 순례자 보호를 위해 조직된 교회 군대)과 시온의 소수도원이라는 유명한 비밀조직은 깊이 믿고 신뢰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한 비밀에 대해 자세한 비밀기록들을 간직하여 남겨 놓았다. 그것이 중세 성당기사단의 지방지부의 성터가 남아있는 프랑스 남부 마을 렌느 르 사토에서 1891년 폐허가 된 이 성채의 성당을 복원하던 교구 신부 베랑제르 소니에르에 의해 양피지 문서와 보물이 발견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보물과 고문서를 팔아 막대한 부를 누린 신부에 관한 이야기를 조사하던 기자들에 의해 모든 사실들이 밝혀지게 되었다.

BBC 방송에서 부분적으로 3차례에 걸쳐 방송까지 된바 있는 이러한 내용의 책 성혈과 성배가 출판이 되어 세계를 경악케 하자 이에 놀란 영국의 기독교와 천주교인의 사실 확인 소송이 영국 법정에 제소되어 재판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대로 예수를 믿어온 가문의 기독교인이 주심판사를 맡아 3년 간에 걸쳐 심리를 하였으나 프랑스에 사는 예수의 27대 후손 피에르 프랑타르씨 등 많은 증인과 증거들을 비롯해 조상이 예수로 되어 있는 족보 책과 프랑스의 렌느 르 사토에 예수의 묘비명이 있는 예수의 무덤까지 현지 답사하여 확인하고는 무덤의사진까지 보여주며 책의 내용을 모두 인정하는 판결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심판사는 판결을 미뤄오다 빨리 판결하라는 법원의 독촉을 받고 판결하기를 나도 3대째 예수를 믿어온 집안의 자손으로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정하려고 무던히 노력하였습니다만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프랑스로 망명하여 84살까지 살다 죽었습니다. 예수는 로마 병사 판델라의 아들이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라고 판결을 하였다.

이에 이러한 판결을 지켜보던 신부, 수녀, 목사들은 법정 방청석에서 옷을 찢고 통곡을 하였으며 기독교인이 목을 매고 자살하는 등의 소동이 벌어지고 교회가 문을 닫는 등의 소란이 영국 전역에서 확대되어 영국정부에서는 이러한 혼란이 지속되고 전 세계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판결문의 공개 및 해외 유출을 금지시키고 언론에 보도를 통제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미 재판과정을 지켜본 영국의 기독교인들은 약 80%가 회교 등 타종교로 개종을 하였으며 유럽과 미국 등에서도 수많은 교회가 문을 닫는 등의 소동이 이어졌다. 1982년 처음 책이 나와 세계적인 화제가 되자 대한 민국에서는 전 언론(동아, 조선, 중앙, 부산일보등)에서 보도(사진3 :1982.2.20자 동아일보 )를 하였으나 재판과 판결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보도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기독교가 급격히 퇴락하던 그 당시의 세계적 추세와 달리 대한민국의 기독교는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에 편승하여 계속해서 급성장하는 이변을 낳았다.

그리고 또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이 죽지 않았다는 증거로서 예수의 시신을 쌌던 성의(聖衣)라고 하여 기독교와 로마 교황청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증거로 삼던 세마포(토리노 성의로 불려왔음)가 죽은 사람이 아닌 산 사람을 감쌌던 것이라는 것이 과학적 분석과 여러 가지 문헌의 고증에 의해 밝혀진 바 국내에도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 」(앨마 그루버, 홀거 케르스텐 지음, 홍은진 번역, 아침이슬 간행)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음을 더욱 분명히 밝혀 주고 있다.

토리노 성의는 1세기 때 부터 유대와 유럽의 교회와 왕가에 때로는 공개 전시 되며 보관 되어오다 1460년에서 1983년까지 성의를 보관해 오던 사보이 왕가에서 교황청에 기증을 하게 되어 현재 로마 토리노의 성당에 보관되어 있다.

그러나 죽은 시체에는 필요가 없는 100근(40kg)이나 준비 된 상처 치료제인 몰약과 침향 (알로에추출물)(요한복음19:40)과 피, 땀 등에 의해 얼굴과 전신이 그대로 새겨져 있는 토리노 성의는 과학자들의 분석에 의해 상처 입은 산사람을 싼 세마포라는 것이 밝혀져 오히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유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이러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1988년 10월 13일 토리노의 대주교 발레스트레오 추기경은 토리노 성의가 13∼14세기에 만들어 진 모조품이라고 발표를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아는 과학자들이 공개적인 검증을 계속 요구하자 1997년 9월5일에는 토리노의 성의가 예수의 시신을 쌓던 진품이라고 번복 발표를 하고는 감정 요구에는 일체 응하지 않고 있다.

토리노의 성의는 예수 대신 십자가를 진 사람의 몸을 감쌓던 것이지만 그 마저도 죽지않았음을 증명하는 증거물이 되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음을 더욱 분명히 증명 하고 있다.

출처 : 시인의 바다
글쓴이 : 나의라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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