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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천경자, 위작 논란 “민주주의를 만끽 하십시오”

나레 2017. 1. 22. 11:33

김재규-천경자, 위작 논란 “민주주의를 만끽 하십시오

김재규, 천경자 위작 논란으로 재조명 “혁명이었다”


김재규 최후 진술 풀영상



김재규 - 천경자 어떤 관계일까? 천경자 미인도 소유자가 김재규 장군이었기에 김재규 장군이 천경자 위작 논란에 재등장했다. 천경자 미인도 진위여부엔 김재규 장군 소유여부를 가려야 한다는 논란이 일어난 것이다. SBS에선 천경자 미인도 위작 논란을 다룬 ‘망자(亡者)는 알고 있다’를 방영했다. 김재류 천경자 미인도 이 함수와 천경자 미인도 위작 논란 진실,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한 김재규 전 중앙정부장 소유에 ‘주목’하고 논제를 풀어갔다.

SBS ‘그것이알고싶다’는 21일 천경자 미인도 위작 논란에 있어 ‘암살범의 압수리스트- 미인도와 김재규’ 편을 방송했다. 26년간 지속돼 온 고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위작 논란을 다시 살펴보는 과정에서 김재규 전 장군이 등장한 것이다.

▲ 군사법정에서 최후진술을 하고 있는 김재규 장군, 김재규 장군은 지난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여성을 앉히고 술을 마시던 도중 자신이 지닌 권총을 발사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특히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천경자 미인도 위작 논란의 출발점이 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 주목했고 인터넷과 SNS를 중심으로 김재규 전 장군에 대해 관심이 증폭됐다. 특히 김재규 전 장군이 국사법정에서 행한 ‘최후 진술’이 네티즌들의 관심을 폭발시켰다. 김재규 전 장군의 최후진술 녹음을 게시한 아이디 ‘Mugunghwa’의 영상은 약 25분59초 가량으로 22일 오전 현재 1,369,524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으며 김재규 전 장군의 음성을 또렷하게 들을 수 있다.

김재규 전 장군은 최후진술을 통해 지난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을 권총으로 쏘아 죽인 사건을 ‘민주주의 혁명의 완성’으로 보고 있다. 또한 김재규 전 장군은 최후 진술 말미를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민주주의를 만끽하십시요”라고 마무리 한다. 네티즌들 사이에선 민주주의에 기반한 현실에서 김재규 전 장군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김재규 전 장군이 천경자 미인도와 천경자 화백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를 프랑스 감정팀까지 와서 위작이라고 판정했지만 검찰은 최근 문제의 천경자 미인도를 진작이라고 발표하며 핵심 이유로 이 작품을 김재규 전 중앙정부 부장이 소장하고 있었다는 점을 들었다. 김재규 전 장군이 다시 세간에 부상한 이유다.

하지만 천경자 화백 유족과 김재규의 개인비서 최종대씨는 ‘그것이 알고 싶다’와의 인터뷰에서 검찰측 주장을 부정하며 신군부가 미인도를 천경자 화백의 작품이라고 단정한 이유가 김재규 전 중정부장을 부정축재자로 몰아야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26년째 이어져온 천경자 미인도 위작 논란 사건의 중심에 김재규 전 장군이 있었다.

지난 1991년 이래 26년간 지속돼온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위작 사건. 지난 12월 19일, 검찰은 미인도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새로운 사실을 발표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은 “소장 이력의 확인이 아주 핵심적인 부분이다. 요약컨대 미인도는 1980년 계엄사령부가 당시 정보부장이었던 김모 씨로부터 헌납받아 재무부, 문화공보부를 거쳐 국립현대미술관에 최종 이관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당대 최고의 여류 화가였던 고 천경자 화백 1991년 4월 당시 미인도를 진품으로 결론 낸 국립현대미술관과 천화백측의 끊임없는 대립은 천경자 화백이 타계한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유가족에 의해 계속돼오고 있다. 당시 천경자 화백은 위작 논란을 제기하면서 “내가 낳은 자식을 내가 알아보지 못하겠느냐?”는 한이 서린 말을 쏟아냈다.

때문에 천경자 미인도 위작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최근 천경자 미인도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해 국내외에서 과학 감정을 진행했고, 그 결과, 서로 상반된 의견이 도출됐다. 프랑스 감정기관인 뤼미에르 테크놀로지는 99%위작 판단했고, 국내 검찰과 국과수는 진품으로 발표했다.

뤼미에르 테르놀로지측은 한국 검찰이 천경자 미인도가 위작이라는 자신들의 감정결과를 받아들지 않은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뤼미에르 테르놀로지 장 페니코 대표는 “이 방식은 천경자 화백 뿐 아니라 반 고흐나 르느와르 같은 대 화가들의 작품도 작업했던 매우 신뢰성 있는 작업이다. 천경자 미인도가 진작일 확률은 0.0002%다”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김재규 전 장군과 천경자 미인도는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을까? 1979년 10월26일.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가수 심모씨와 여대생 신모씨를 곁에 앉히고 양주를 마시다 김재규 전 장군의 총탄에 의해 박정희 대통령은 현장에서 즉사했다. 그를 살해한 암살범은 박정희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부장이었다.

당시 정권을 탈취하려던 전두환 신군부는 김재규 장군에 대한 대통령 살해혐의와 별도로 그의 보문동 자택에서 고미술품, 귀금속을 포함한 고서화 100여 점이 발견됐다고 밝히면서 김재규 전 장군을 부정축재자로 몰아버렸다.

김재규 전 장군의 재산은 당시 모든 재산은 기부채납 형식으로 국가에 환수됐고, 김재규 장군이 모은 고가 미술품 속에 1977년작으로 표기된 천경자의 미인도가 있었다는 것인데, ‘그것이알고싶다’가 입수한 김재규 환수재산목록을 확인한 결과, 총 다섯 장으로 이루어진 문서에는 천경자의 미인도를 포함해 총 155개의 압수 물품이 적혀 있었다.

그런다면 김재규 전 장군의 환수재산목록은 누구에 의해 어떻게 작성된 것일까? 그 목록에 천경자 미인도가 들어 있었던 열쇠는 그 작성자가 알고 있지 않을까? ‘그것이알고싶다’ 제작진은 그동안 방송에 나온 적이 없는 김재규 전 중정부장의 여동생 부부와 사형 선고를 받기 직전까지 그를 보필해 자택 내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개인 비서 최종대 씨를 만나 천경자 미인도와 김재규에 얽힌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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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전 장군이 소유했던 천경자 미인도는 왜 진품이어야 하는가? 김재규 전 중앙정버 부장의 여동생은 “(오빠는) 좀 특별한 사람이었다. 우리가 이런 이야기들을 다 못한 게, 오빠 이야기를 가족들이 좋게 하지, 나쁘게 하겠나. 그리 생각을 할까봐...가까이 아는 사람들도 우리말을 다 안 믿는다. 자신들이 상상하는 건. (김재규 전 장군이) 부정축재를 해가지고 (집안에서) 막 금덩이가 쏟아져야 이해가 되는 거다”라고 말했다. 전두환 신군부가 김재규 전 장군을 철저하게 희대의 영웅적인 지도자 박정희를 쏘아죽이고 정권을 쥐려는 혁명 망상가와 정신이상자, 부정축재자로 몰아버렸기 때문이다.

검찰은 1980년 김재규 전 중앙정보 부장에게서 환수한 미인도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이관됐다는 소장이력을 근거로 천경자 미인도가 진품임을 주장했다. 또한 과거 김재규의 보문동 자택을 방문했던 미술전문가 김모씨가 응접실 벽면에 걸려있던 미인도를 본적이 있다는 진술이 문제의 그림이 집에 있었다는 유족들의 진술과 일치한다며 천경자 미인도 진위에 대한 논란을 일축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최종대 씨는 “응접실은 안 걸었어. 그건 사람들이 지어내서 한 이야기지. 그건 내가 직접 걸었는데. 미인도는 응접실에 내려온 일도 없어. OOOO에 걸어놨지”라고 진술했다. ‘그것이알고싶다’ 제작진과 만난 천경자 화백의 유족들과 최종대씨는 김모씨의 주장을 부정하며 신군부가 미인도를 천경자 화백의 작품이라고 단정한 이유가 김재규 전 중정부장을 부정축재자로 몰아야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전 장군의 권총에 사살된 10.26사태 이후 전두환 신군부는 12.12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는 사이 김재규 전 중정부장에 대해 국사법정에서 빠른 재판을 진행하며 1980년 5월24일 사형을 집행했다.

하지만, 김재규 정 중앙정보 부장의 지인들은 그가 라면회사 상무로 근무하던 친척에게서 라면박스 하나도 받지 않았던 청렴했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그는 딸에게도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잘 산다며 집 앞 길을 청소시킨 일화도 있다. 지인들은 그러면서 미인도를 김재규 전 중앙정보 부장이 선물로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신군부가 김재규의 보문동 자택에서 가지고 나온 미술품, 귀금속을 포함한 고서화 100여 점중 천경자 미인도는 리스트만 있을 뿐 당시 사진 자료가 남아있지 않았다. 방송에선 김재규 전 중앙정보 부장이 사형 직전 자신이 부정축재자로 몰린 데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육성도 공개됐다. 이 때문에 김재규 전 장군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이 증폭됐고, 일각에선 김재규 전 장군을 재평가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천경자 미인도 위작은 고 박정희 대통령을 사살한 고 김재규 전 정앙정보부장과 관련됐기 때문에 위작으로 단정될 수 밖에 없었던 걸까. 1999년 고서화 위작 및 사기판매사건으로 구속된 권춘식이 검찰 수사과정에서 “화랑을 하는 친구의 요청에 따라 1984년 소액을 받고 달력 그림 몇 개를 섞어서 ‘미인도’를 만들었다”고 말하면서 미인도의 위작논란에 불을 붙였다.

하지만 권춘식은 박근혜정부인 2016년 3월 종전의 말을 번복하고 자신은 미인도를 위작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위작 논란은 더욱 혼동속으로 빠져들게 됐고, 천경자 화백은 미인도가 위작이라고 거듭 주장했지만, 국립현대미술관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1991년 4월7일 절필을 선언했다. 천경자 화백은 이에 대해 “붓을 들기 두렵습니다. 창작자의 증언을 무시한채 가짜를 진짜로 우기는 풍토에서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천경자 화백은 붓을 꺾어 버렸다.

천경자 미인도 위작 논란으로 인해 천경자 화백은 절필선언과 함께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지위도 버렸다. 자신의 작품 90여 점은 서울 시립미술관에 기증하곤 딸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천경자 화백은 지난 2015년 8월까지를 향년으로 하고 이역만리 타향에서 생을 마감했다.

김재규 전 장군이 28년만에 다시 국민들에게 등장한 이유는 물론 천경자 미인도 위작 논란 때문이다. 하지만, 김재규 전 장군이 단순히 미인도를 소장하고 있었다는 것 만으로 김재규 전 장균의 재등장을 평가해서는 결코 안된다는 게 네티즌들의 판단이다.


21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언급된 김재규 전 장군은 암살범일까 혁명가일까? 또는 김재규 전 장군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사살하고 정권을 잡으려고 했을까? 김재규 전 장군이 천경자 미인도를 비롯해 부정축재를 일삼았을까? 등 수많은 의혹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김재규 전 장군에 대한 재평가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한인협 = 박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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